Installation view




































Legato 
2026.4.2 - 4.22


글: 인가희 
사진: 최철림





“Ineluctable modality of the visible: at least that if no more, thought through my eyes.”¹
(“보이는 것(시각)의 피할 수 없는 양태—나는 눈을 통해 생각한다.”)

우리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이미지를 저장한다. 화면 속에서 경험은 폴더가 되고, 정리는 습관이 되며, “기록”은 종종 경험의 동의어가 된다. 그러나 이 간편한 등식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관찰을 대신할 때, 그 순간의 세부가 오히려 덜 남을 수도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되어 왔다. 물론 그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집중해서 촬영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통찰은 분명하다. 카메라가 ‘기억의 외주화’를 맡는 동안, 우리의 주의와 감각은 다른 방식으로 배분되고, 그 배분은 이후의 회상에 흔적을 남긴다. 구유빈의 출발점은 이 지점에 놓인다. 작가가 붙잡는 것은 ‘정확한 장면’이 아니라, 장면이 기억으로 바뀌는 과정의 불안정성—어떤 부분은 사라지고, 어떤 부분은 강조되며, 어떤 색은 사후적으로 덧씌워지는 그 변형의 순간이다.

기억 연구는 오래전부터 기억을 ‘복제’가 아닌 ‘구성’의 과정으로 설명해 왔다. 우리는 과거를 그대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서·목적·맥락에 맞추어 파편을 다시 조립한다. 그래서 기억은 늘 부분적이고, 때로는 왜곡되며, 그 왜곡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인간 인지가 작동하는 방식의 표지이기도 하다. 구유빈의 <레가토>는 이 구성적 기억을 음악적 개념으로 번역한다. 레가토는 음과 음을 끊지 않고 이어 연주하는 방식이다. 각 음은 독립적이되, 앞선 음의 여운을 품은 채 다음 음으로 넘어간다. 이 전시에서 ‘여운’은 시각의 잔상이며, ‘이어짐’은 연상의 이동이다. 화면들은 단절된 사건의 연쇄가 아니라, 서로 스며들어 리듬을 이루는 인지의 흐름으로 작동한다.

이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유화의 물질성이다. 이 회화에서 유화는 매체라기보다 사건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겹치고, 구상과 추상이 서로를 덮고, 다시 긁어내며, 다시 쌓아 올리고, 다시 그려낸다. 그 반복은 완성을 향한 직선이 아니라, 기억의 운동—삭제와 덧붙임, 선명함과 흐림, 소멸과 재등장—을 표면 위에서 재연하는 리듬이다. 임파스토의 두꺼운 마티에르는 감각의 압력을 물질로 밀어 올려, “그때”의 감정을 하나의 질감으로 굳힌다. 그라타주의 긁어냄은 아래층을 노출시키며, 회상이 언제나 ‘뒤늦게 도착하는 이전의 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펜티멘토—수정의 흔적이 시간이 지나 되비치거나 감지되는 현상—는 이 회화에서 우연한 부스러기가 아니라, 기억의 윤리로서 기능한다. 바꾼 흔적을 숨기지 않고 남겨 두는 것. 잊힘과 변경을 결함이 아니라 구조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하여 한 화면은 ‘지금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이전에 있었던 이미지의 유령’을 품게 된다.

<레가토>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식물은 그러한 층위를 관통하는 시각적 단서다. 식물은 고정된 객체라기보다, 번지고 자라며 퍼지는 존재다. 그래서 그것은 장면을 상징으로 봉인하기보다 장면을 통과하는 리듬으로 남는다. 같은 잎맥이 다른 빛에서 다시 나타나고, 비슷한 뻗음이 다른 공간에 이식되며, 관람자는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어떻게 이어서 보게 되는지’를 체감한다. 식물은 여기서 레가토의 도치된 박자표처럼 작동한다. 끝을 찍는 대상이 아니라, 다음 장면으로 밀어 넣는 여운이다.

관람을 위한 제안을 덧붙이고 싶다. 이 전시는 ‘읽히는’ 전시라기보다, 시각적 리듬으로 ‘청취되는’ 전시에 가깝다. 처음에는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기보다, 몇 걸음 간격으로 이동하며 잔상을 의식해 보기를 권한다. 이어서 다시 돌아와, 방금 본 화면이 현재의 화면에 어떻게 들러붙는지—색의 공기, 지워진 윤곽, 반복되는 식물의 리듬—를 확인해 보라. 가능하다면 촬영을 잠시 미루고, 기억이 스스로 편집되는 속도를 허용해 보라. 이 전시의 핵심은 ‘어떤 장면’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당신의 인지가 어떻게 변주되는가에 있다.

구유빈의 ‘레가토 Legato’는 기억을 과거에 고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이 현재의 감정과 시선에 의해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유화의 층과 흔적, 공백과 잔상으로 설득한다. 그 설득은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보았다”고 믿는 것은 정말로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우리가 “기억한다”고 말할 때, 그 기억은 얼마나 현재형인가.

¹ James Joyce, Ulysses, Episode 3 “Proteus”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