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_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오픈스튜디오 (2023)잊혀져 가는 감각을 붙잡을 때 스쳐지는 기억과 그날의 잔상을 실감하는 순간 단절되어 버린 듯한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시공간은 확장된다. 구유빈의 작품에서 감각과 기억의 연결고리이자 새로운 의미로 작용하는 사물들에 대한 감각적인 회화 기법은 작가의 개인사적인 경험과 보는 이의 찰나의 감정을 마주하게 만들어 묘한 감각을 끌어당긴다. 우리가 지난 기억을 떠올릴 때 오래된 기억일수록 구체적인 이미지보다 흐릿한 잔상으로 회상하는 것처럼 찰나의 기억 속에 내제된 흐릿한 잔상의 이미지는 그날의 감정과 순간, 그리고 그날의 공기와 온도를 은은하게 구현해낸다. 이를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작가는 그날의 세부적인 잔상과 기억 그리고 감각을 지난날의 잔상을 응축하고 있는 환경과 사물이 가진 색감과 형상에 주목하여 내면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외에도 카메라에 담긴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실제 경험과 감각에 결부된 요소들을 되살리고자 평면적인 스크린 화면에서의 색감과 현실에서의 빛을 활용한 인지과정을 재현한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형상화한 보편의 형태와 특정한 양식은 감각적인 직관의 대상이라 주장한 괴테는 ‘색채란 빛과 눈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색감은 인간의 지각 현상과 감수성을 비롯한 통찰이 요구되는 미학적 요소이다. 구유빈은 간직하고자 하는 그날의 잔상과 실제 이미지에서 도출되는 색감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극대화하여 과거 경험 속 여운과 감각에서 작용하는 지각 현상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며 소통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경험과 감각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자 디지털 기계를 활용한다. VR에서의 공간이 특정한 장소를 들여다보며 물리적 환경에서의 유사 감각을 느끼게 하듯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디지털 스크린에서 재현된 실제 감각을 회화로 살려낸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 특정한 사물에 빛을 투영하여 촬영하는 작업 방식을 선보인다. 자연광에서의 사물과 조명등과 같은 카메라의 플래시를 통해 빛의 노출도를 높여 빛을 투영하면서 사물 외의 존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남겨진 사물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밝은 플래시로 인해 사물의 주변 환경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을 온전히 기억되지 않고 잊혀져가는 흐릿한 기억에 대한 형상으로 은은한 색감과 블러 기법을 통해 작품 속에 담아낸다. 여기서 아이패드 와 포토샵의 기능을 통해 노출 세기와 채도를 조절하여 그날의 잔상과 감각에 맞닿아 있는 색감을 도출하여 회화로 구체화시키는 기법을 활용하였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대한 빛과 색채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도출한 은은한 색감으로 자신 내면의 감각을 탐구하고자 시도한다. 

코로나 19는 작가에게 과거를 회상하여 화면이 아닌 실제 경험에서의 감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일상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겨 삶의 활기를 되찾고자 하는 주요 동기로 작용되었다. 이는 작가 외의 다른이들에게도 공동의 기억으로 작용된다. 작품 <밤공기>(2023)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속 조명 빛을 받아 존재감을 드러내는 벚꽃과 조명 등으로 환해진 거리 간의 시너지를 나타내는 가운데 어느 봄날의 감각과 기억을 나타낸다. 또 다른 작품 <Sunday Morning>(2023)은 2022년 초가을 온 가족들이 모여 외출하기 전, 가족들의 흔적이 담긴 테이블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과 아침의 햇살, 상쾌한 공기를 가족의 흔적을 나타내는 상황 속 오브제들로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아직 코로나 19의 여운은 종결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우리의 일상생활 속 흔적을 남긴 채로 부유하고 있다. 일명 ‘소확행’ 의 필요성은 현대인들에게 나날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날의 감정과 세부적인 상황에 집중하여 빛의 요소로 형상화된 과거의 잔여물을 은은하게 전달하고 있는 구유빈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심리와 감각의 형상들로 관객의 감각에도 문을 두드려 서로의 감각과 기억을 공유하고자 시도한다.